[감상] 모탈 컴뱃(2021),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질주하다 태초에 게임이 있었느니라






내용에 대해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신경쓰시는 분들은 피해 주십시오.



- 세계적인 인기 게임 프랜차이즈인 '모탈 컴뱃'의 실사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역시 1995년판의 실사 영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의 감성으로도 좀 우스운 느낌의 분장이나 연출 덕에 각종 밈으로도 활용되곤 했습니다만, 원작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재현도와(예를 들어 생쑹 역의 캐리 히로유키 타가와. 지금도 그냥 어스렐름에 강림한 생쑹 본인이라고 인정받는 수준이죠) 그냥 머리를 비우고 편히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우직한 전개 덕에 원작 팬들에게도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로 모탈 컴뱃의 실사화애 도전하는 작품은 반드시 1995년판의 영향, 그리고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되어 있죠(2요? 그런 작품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케모노 프랜즈 2기 같은 거라구요. 잊으세요). 그렇게 보았을 때, 새로운 때깔로 등장한 2021년판의 모탈 컴뱃은 연출 측면에서는 1995년판의 충실하고 정당한 후계자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마냥. 오로지 원작 팬들만을 보고 달리는 작품입니다. 그에 따른 이득과 손해를 모두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자 팬들아 니들이 자자 뭘 원하는지 다 암. 안다고. 이런 거지? 라고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


-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 특히나 게임 원작의 영상화에서 주 고객이 될 원작 팬들이 언제나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제대로 연출한 원작 재현이기 마련이죠. 내가 인상깊게, 혹은 시쳇말로 빤스를 갈아 입으면서 봤던 그 장면, 그 작품은 이게 없으면 시체지라고 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대사가 거대한 스크린에서 울려 나오고 머리 속에서 그렸던 이미지를 충족시켜줄 때 원작 팬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갓갓 소리를 내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겁니다.

다만 그러면서 시장 확장이라는 매체 전환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도록, 새로운 팬들을 흡수해서 기존 팬들과 함께 환호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원작의 팬보이들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작품이 있게 마련입니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후자의 좋은 모범 사례를 최근의 작품에서 찾는다면 아마 페이트 HF 극장판 시리즈일 겁니다. 글자 그대로 이 장면이 이렇게 연출되면 진짜 쩔텐데, 이러쿵 저러쿵,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던 HF 시나리오 팬들을 위한 선물 같은 작품이었죠. 이번 모탈 컴뱃도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FINISH HIM, Get over here, Flawless Victory. 모탈 컴팻 팬들이 바라던 모든 것을 집착에 가깝게 재현하면서, 거기에 1995판이 가지지 못했던 피비린내까지 끼얹은 물건이에요. 그런 점에서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 허나 동시에 그에 떠른 단점도 너무나 충실히, 아니 그 이상으로 가져 온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기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오리지널 주인공인 콜 영의 캐릭터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오프닝 신에서 가족을 지켜내지 못했던 스콜피온의 슬픔을 그 후손인 영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현하고, 그러면서 둘의 이야기를 연결시켜서 마지막 싸움에서 원수인 서브 제로의 처단이 불러올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그런 서사를 표현할만큼 콜과 가족 사이의 유대감이 제대로 묘사된 것도 아니고, 스콜피온과 콜 사이에서 어떤 '의지를 잇는 자'로서의 무언가가 묘사된 것도 아니라서, 언급했다시피 굉장히 왕도적인 전개인데도 공감할 여지를 주질 못합니다.

더군다나 격투게임 원작 영화의 숙명(?)이기도 한, 수많은 캐릭터를 어떻게든 조금씩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1995년판이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충실한 후계자인 2021판도 그 문제점을 그대로 가져오기에 더 심각해지죠. 상영 시간은 90분으로 긴 편이 아닌데 그 안에서 최대한 애들 얼굴은 다 보여줘야 하고, 적어도 기술 하나씩은 보여 줘야 하기에 장면 전환도, 시간 전환도 빨라서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더더욱 적습니다. 내용 이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설정마저도 레이든의 대사 몇 마디로 퉁쳐 버리면서 질주하는 덕에(그래서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체 왜 어스렐름이 위기라는 건지, 뭐 어떻게 해서 아웃뭐시기가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인지조차 이해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더더욱 그렇고요.

이 문제는 언급했다시피 1995년판도 가지고 있던 문제이긴 합니다. 허나 1995년판은 원작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최고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리우 캉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오리지널 서사를 약간만 끼얹은 정도라 적어도 원작 팬들이 조금이나마 감정 이입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죠. 허나 콜 영은 오리지널 캐릭터입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원작이 있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영상판 오리지널 캐릭터는 반감을 사기 쉬운데(간단히 이야기해서 오리지널 캐릭터가 원작 캐릭터를 패배시킨다고 치면, 저 놈은 뭔데 xx가 발림? 미친 거 아님? 같은 팬들의 반감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지요...), 관련 서사도 부족하고 공감할 여지도 부족하니 영화가 표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빈말로라도 시나리오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운 영화라고 밖에요. 상영 시간이 딱 10분 정도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가지게 됩니다만, 그런 영화가 한둘도 아니니 면죄부를 받긴 어렵겠죠.


- 그렇게 기껏 나온 오리지널 주인공도 부실하게 만들고,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까지 개판으로 만들면서 이 영화가 얻은 미점은 언급했던대로 결국 액션, 정확히는 원작 팬들이 바라던, 그들을 위한 액션이겠죠. 조 타슬림이 열연한 서브 제로는 최종 보스이자 이 작품의 핵심 빌런으로서 그 존재감을 90분 내내 과시하고(사실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뒤에서도 이야기 하겠지만 의도적으로 생쑹은 속편을 위해 미뤄두고 서브 제로에게 전력 투구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사나다 히로유키의 스콜피온도 작품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로서의 위엄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절정부에서 예고편에서도 등장해 덕후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Get over here! 와 함께 시작되는 이 둘의 대결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대로된 서사가 작동하는 부분이라 더 그렇겠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쿵 라오의 모자 절단기로 대표되는, 모탈 컴뱃을 상징하는 요소인 유혈 연출에서는 그야말로 와,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작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머리와 팔다리가 호쾌하게 휙휙 날아가고, 육편이 튀는 잔혹한 연출로 원작 팬들에게 그래 이게 페이탈리티지! 라는 환호를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면을 만들어내죠. 그 엉망인 스토리를 가지고도, 장르 영화치고는 의외로 평점이 나쁘지 않은 것도 그 영향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보여주고 싶고, 이런 걸 보고 싶다고 생각한 장면만을 위해 질주한 영화, 그런 영화가 자연스럽게 받을 찬사와 비판을 그대로 받고 있는 거겠죠.

분명 원작과 상관 없는 일반 관객을 만족시킬만한 만듬새의 영화는 아니에요.하지만 애초에 그런 건 신경 안 쓰고 만들었다는게 이 영화를 본 제 생각이고 말이죠. 그렇기에 호불호가 너무나도 극명히 갈리는 작품인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만족할 사람만 낄낄대면서 만족할 수 있는 영화지만, 그런 영화가 가끔은 나와 줘도 나쁠 건 없지 싶습니다. 적어도 저는 꽤 만족하면서 봤으니까요. :)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자체로서의 평점은 C+(65-70점 정도), 원작 팬을 위한 영화로서는 A-(90 전후) 주겠습니다.



P.S

네 영혼은 네 것이다, 이거 한 번만 보여주고 사라진 생쑹도 그렇고, 엔딩 신의 자니 케이지 포스터도 그렇고... 정말 대놓고 속편을 만들 거라고 외치고 있는 영화입니다만, 과연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제작비도 아주 싸진 않은 영화고, 아무래도 이 코로나 시국 덕에 흥행 페이스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기에; 그래도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램이지만요.




덧글

  • 이선생 2021/05/01 21:41 # 답글

    백번 공감하는 리뷰입니다. 스토리니 뭐니 그런건 다 갖다버리고 원작 펜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으로 꽉꽉 체운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원작펜인 저는 굉장히 만족했으며 한국에서는 몰라도 미국에는 모탈리안(모탈컴뱃 팬들)이 상당수 있으니 후속작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 나인볼 2021/05/01 21:11 #

    저도 그래서 글에서 쓴 그대로 꽤 즐거이 봤습니다. 장문의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역병 무드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속편이 나올만한 흥행은 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많죠. 그래도 기대를 해 보게 되는게 팬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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