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명 6 - 흥망성쇠 태초에 게임이 있었느니라


- 하다 보니 계속 글을 수정하게 되서, 리뷰치고는 꽤 늦었다. 발매일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논 플레이 타임은 상당하지만, 이래저래 컨셉도 바꿔보고 새로 추가된 여러 문명을 건드려 보다 보니 최종 승리까지 간 건 세 번. 크리로 과학/문화승리, 선덕으로 과학 승리.

일단 종합적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점은 정말 극대화된 반면 단점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확장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우 잘 발달된 상체를 가졌지만 하체가 그에 비해 부실한 투수를 보고, '너는 하체만 단단해지면 완벽해질테니 노력 좀 해봐라'라고 했더니 1년 후 상체만 두 배로 커져서 돌아온 걸 본 느낌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 장점은 역시 오리지널 버전에서도 호평 받았던 내정과 게임 운영의 섬세함. 새로 추가된 모든 요소(총독 시스템, 추가 불가사의&자연경관, 시대 점수 관리)가 굉장히 잘 맞물려 있고, 문명별로 강점을 가지는 시기와 특화 포인트가 더욱 확실해지고 개성이 부여되어 있어서 문명 시리즈 최대의 세일즈 포인트인 리플레이성이 잘 살아난다.

특히 이번 확장팩의 캐치 프레이즈인 흥망성쇠에 관련된 부분이자 최대 변경점인 시대 점수 관리가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 황금기를 가지면 그 반동으로 다음 시대에 요구되는 점수가 더 늘어나 암흑기로 빠져들기 쉽도록 한 점은, 게임 밸런스와 현실 고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낸 훌륭한 부분이다.

또한 암흑기를 맞이하더라도, 그 다음 시대에 황금기 점수에 도달할 경우 보상으로 주어지는 영웅기의 집중 전략 보너스가 정말 어마어마하므로, 끊임없이 점수를 체크하면서 안되겠다 싶으면 불가사의나 유레카, 위인 확보 등 시대 점수를 주는 요소들을 한 단계 미뤄 그냥 암흑기를 맞이하고 버티면서 다음 시대의 영웅기를 노리는, 말 그대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같은 전략적인 눈치 싸움도 가능하기에 한 턴 한 턴 조율을 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대 점수와 더불어 이번 확장팩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총독 시스템도 훌륭한 요소. 시기와 상황에 따라 설정한 문명의 방향성을 고려해서, 완전히 한 방향으로 특화할 수도, 단점을 보완하며 약점이 없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도록 만들어 주는 요소다. 또한 사절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한 게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총독 관련 포인트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미래 사회 제도를 연구하면 하나씩 얻긴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나-중의 이야기고), 더더욱 어떤 방향으로 문명을 발전시킬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해진다.

전반적으로 이미 오리지널 시절에, 지나치게 간략해졌다고 비판받던 5가 두 번째 확장팩에 가서야 도달한 내정/문명 설계 수준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이번 흥망성쇠에 와서는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진 느낌. 5의 전반적인 단순함에 약간의 루즈함을 느꼈던 유저들이라면, 설계와 특화라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리지널에서 문제로 지적받은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없는 건 아니다. 사실상 폐급 취급을 받아 멀티에서 기마병이 날뛰게 만들었던 창병(정확히는 대 기마병 테크 유닛들) 계열이 강화된데다, 군사 계열 총독이나 시대별 특화를 이용해 공격이나 수비를 강화하는 등 주변의 상황을 보고 준비를 해 둘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양상이 많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다.



- 허나 언급한 모든 장점들을, 역시나 거의 활용하지 못하는 멍청한 AI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오리지널에 이어 이번 확장팩에서도 여전히 6의 평가를 깎아먹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밖엔...

그나마 외교 관련으로는, 중세 이후 정도부터는 문명의 아젠다에 이전보다는 좀 더 일찍 제대로 대응하는게 가능해지고, 대사관 등의 효과가 그 덕에 좀 더 상승해서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초반에는 여전히 답이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합니다 + 나중에 가면 밝혀지는 요소로 등장하는 '성별이 다릅니다'(...) 같은 이유로 비난 2연타를 얻어맞고 나면 입가에 자연히 실소가 감돌게 된다.

그리고 외교 못지 않게 AI가 심각하게 못 다루는 요소가 바로 추가된 부분인 총독. 난이도가 어중간한 게임에서는, 알박기로 당당히 유저의 영토 근처에 도시를 만들어 놓고는 충성도 관리를 못해서 하나씩 알아서 유저에게 가져다 바치는 코미디같은 광경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경우에 따라선 외교관 총독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이런 도시들을 빼앗아 먹는 것도 가능한 수준.

그 외에도 근처의 약소 문명이 동맹 하나만 믿고 전쟁을 걸었다가 패망하는 모습도 여전하고, 앞서가는 문명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시스템인 비상도 AI들끼리 전혀 연계가 되지 않아 유저에게 금을 퍼주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최적화는 되려 더 구려진 느낌이고 크래시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내용물이 아무리 좋아져도, 그릇의 크기 자체가 아직 그걸 다 받쳐주질 못하면 의미가 바래기 마련이다.

즉 굉장히 잘 만들었고, 충분히 흥미를 유발할만한 많은 요소들이 도입 되었는데도, 아직까지는 AI를 비롯한 게임 환경 자체가 그 풍부한 요소들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6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발견한 유저로서는 정말 정말 정말 안타까운 부분. 패치가 계속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밖에.



- 종합해 보면 80점 정도 줄 수 있었던, 의도는 좋았지만 여러가지로 덜 만든 느낌이었던(비록 이전 BE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도) 오리지널에 비해서는 확실히 많이 좋아진 게임. 추가된 요소들만으로도 + 5점은 줄 수 있다. 허나 그 이상까지는, 부실한 AI와 아직도 덜 정비된 게임 환경 덕에 도약하지 못하고 머무른 안타까운 게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점수는 85점 정도로, B+. 구매를 권해볼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왔지만, 소리 높여 추천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니 BE처럼 확팩 하나 내놓고 좀 괜찮아 지려는 수준에서 내다 버리지 말고, 꼭 다음 확장팩도 내놓길. 90점은 그래도 한 번 찍고 가야 할 거 아닌가.


덧글

  • Dive 2018/03/04 18:42 # 답글

    그러나 이 문명6이 다시 리뷰되는 일은 없었다.
    확장팩에 모든 힘을 쏟아낸 파이락시스는 (ry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는 BE 정품(예약구매판)만 보면 아직도 열불이…
  • 나인볼 2018/03/05 20:20 #

    저, 정식 넘버링이니까! BE와는 다르니까!(떨리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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