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신 고질라 - 초현실적인 재난을 맞이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모습을 그리다 극장, DVD,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운 좋게 오늘같은 평일에 시간이 나서, 얼마 없는 상영관을 찾아가 겨우 봤습니다. 시간이 이른 시간이기도 해서인지 저 포함해서 극장에 7명인가 8명 있더군요(...). 덕분에 쾌적하긴 했습니다.


- 전설적인 초대 고지라부터가 전후의 불안감과 핵에 대한 공포를 담아 만든, 지극히 상징적이고 시사성을 가진 존재였던만큼,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후손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메세지를 전달해 왔습니다. 재미의 비중을 어디에 두는가, 어떤 걸 전달하려 하는가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아주 일부의 경우만 제외하고는 고지라라는 존재에 특정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걸 그만둔 적이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신 고질라(이 쪽도 고지라라고 표현하는게 맞겠지만, 일단 개봉 버전 제목이 그러니 그대로 가겠습니다)가 영화 내내 지극히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도 딱히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죠. 고지라는 원래 그런 영화였으니까요. 다만 오히려 그 색이 옅어진 후대의 느낌이 아니라, 집요할 정도로 초대의 느낌에 집착하는지라 마치 60년 이상의 시간을 넘어 만든 리메이크작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물론 초대 이외에도 영향을 준 다른 작품은 많이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에반게리온에서도 모티브로 삼은 적이 있던 고지라 대 해도라가 있겠고. 그리고 괴수의 진화와 변형은 고지라 대 디스트로이어의 느낌이 강하고, 고지라의 내부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켜 결국 무너트린다는 전개는 고지라 대 비오란테같은 작품에서 익히 봐 온 것들이죠.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작품의 내용과 연출 스타일, 그리고 지극히 둔중하고 딱딱한 괴수의 움직임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부분들을 감안하면 결국 이 작품은 초대 고지라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봐야할 겁니다.


- 이번 고지라는 '재앙과도 같은 불가항력의 괴물'이라는 초대의 컨셉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한 단계 나아가 감정을 대부분 배재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풍이나 해일이 무언가 의사나 악의를 가지고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듯이, 이번 고지라 또한 인류에게, 문명에게 그 어떤 것도 전달하려고 하지 않죠. 작품 내내 고지라는 그저 계속해서 움직일 뿐이고, 뒤따르는 파괴는 주체가 아니라 그 존재가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에 따라오는 결과물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흔히 제 2형태로 불리는 첫 상륙때의 모습과 피해 묘사를 보면, 그걸 확실히 알 수 있죠. 말 그대로 사람과 도시가 해일에 떠밀려가는 모습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무덤덤하고 둔중한 그 움직임과 행동이 불러오는 피해와 파괴가 굉장히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집니다. 더불어 고지라의 외견 또한 지극히 일그러지고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기에(아마 100% 노리고 만든 디자인일테죠), 비우호적이고 교섭의 여지가 없는 두려운 존재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덧씌워지면서 그런 효과가 더더욱 커지죠.

작품의 절정부이자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부분인, 파괴의 카타르시스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는 첫 방사열선 신에서도, 고지라는 그런 엄청난 재난을 불러오면서도 고통에 따른 반사적인 분노만 잠시 보였을 뿐, 마치 정교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신체를 변형시키며 그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상대에 대한 방어본능을 발산할 뿐입니다. 문제는 그런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적의를 발산하는 존재가 불가항력의 괴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참상으로 남고 마는거죠.


- 그리고 그런 감당하는게 과연 가능한가 싶은 미증유의 재해에 맞서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이 이 영화의 핵심이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역급 캐릭터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전통적인 히어로나 주인공상과는 거리가 먼, 단순히 얼굴을 가장 많이 비추는 사람 정도에 불과하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각 캐릭터의 캐릭터성은 의도적으로 상당히 억눌려져 있고 배제되어 있습니다. 소위 '팔리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선수인 안노의 스타일을 생각해 봤을 때, 이런 모습은 메세지의 전달에 좀 더 중점을 둔, 다분히 의도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다만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그 덕분에 문제점도 생깁니다).

영화 내내 개인은 지극히 희미하고, 그저 여러 정치, 사회 집단간의 의사와 의견을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면면만 부각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여러가지 의지가 하나로 모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총론이 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진행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내용 전부라고 봐도 별로 무리가 없어요. 고지라가 작품에서 계속 보여주는 형태 변화는 예측의 범위를 넘어서는 재난의 불확실성을 상징하고, 그에 따라 답답하게까지 보이는 여러 절차를 거치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기에 대응하는 현대 사회의 매뉴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참 많죠(지금의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이렇게 정치와 사회를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에서는 당연히 풍자가 따라오게 마련이고, 그걸 보면서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런 전개와 분위기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매우 즐겁게 봤고, 높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소재와 배경, 그리고 메세지를 제대로 잡은 정치 풍자극(다만 표피를 제대로 긁긴 해도, 내부까지 깊게 들어가느냐...를 생각하면 좀 미묘)이자 우화라는 느낌이었어요. 취향은 굉장히 가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인 연출의 질이 그것에 따라 달라지진 않죠. 기존의 팬층과 새 팬층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쓴, 영리한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 허나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영화 내내 묘사되는 일본 사회에 실제로 몸 담고 살고 있는, 그리고 대지진, 대해일을 비롯한 여러 재난을 실제로 겪어 본 일본인들이 아니면 솔직히 100%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더불어 영화 안에서 묘사되는 정치적인 메세지나,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작위적이고 앞부분의 분위기와도 안 어울리는 희망적인 대사는 '안'의 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는 거북하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어요.

어떤 의미로는 방향은 정반대지만, '너의 이름은'도 담으려고 했던 '일본은 아직 괜찮다!'라는 메세지를 막판에 너무 몰아넣으려고 하다보니 전체적인 밸런스가 약간 무너진 느낌마저 듭니다(사실 그것도 의도한 거리고 보고 있지만요). '완벽한 내수용'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오는 거겠죠. 타국에서 흥행하는데는 매우 안 좋은 요소입니다. 더불어 아무래도 일본을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대하기는 어려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덧붙이면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하다 스스로 분위기를 깨트리는 모습이 또 보이는 부분이, 바로 문제의 미국 특사, 카요코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역할과 이미지가 제한되어 있는데, 이 카요코만 그 굉장한 영어 발음(...)과 오버 넘치는 제스쳐 덕분에 완전히 따로 놀아요.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죠. 그 덕분에 이 캐릭터가 깨발랄하게 말하는 부분만 뭔가 장르가 달라지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뭔가 그래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하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건지, 아니면 덤덤한 분위기를 풀어줄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의도가 뭐였던 이 캐릭터는 총체적인 실패작입니다. 작품 안에서 노련하게 자신이 의도한 바를 대부분 관철한 감독이 왜 이 부분에서만은 이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 그런 여러가지 부분들을 다 해서 총평을 하자면, 절제된 느낌을 주면서도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와 이미지를 확실히 전달했던 연출의 노련함은 역시 높게 평가할만합니다. 개인적인 팬심이 폭발하는게 보이는 수준인데도, 그런 선대에 대한 넘치는 리스펙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포장해서 영화 안에 녹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솜씨는 있네요.

반대로 호불호가 지극히 갈릴 수 있는 캐릭터 연출과 타국인이 공감하긴 어려운 여러가지 감정적인 요소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분위기에 반하는 후반부의 감정선, 그리고 이시하라 사토미(...) 정도가 두드러지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전체로 놓고 보면 사실 다 자잘한 요소들입니다만, 그게 여러 부분에서 튀다보니 장점만으로 누르고 넘어가긴 어렵더군요.

결론은 종합해서 82-3점 정도 주고 싶습니다. 대략 B ~ B+ 정도가 되겠네요. 기존의 고지라 영화들과 비교해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놓을 수 있는, 그럭저럭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워나 용가리 같은 안 타는 쓰레기와 비교하고 있는 네이버 잉여들에겐 자살을 추천합니다.




P.S

뭐 척수반사에 가깝게 우익 이야기가 나오던데... 이 영화를 가지고도 우익뽕이네 뭐네 한다면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건 그냥 마음에 안드는 부분엔 다 우익 가져다 붙이고 싶어하는 근근웹스러운(?) 마인드라고 밖에 보기 어려워요.

영화 안에서 느껴지는, 구세대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은근한 거부 의식이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히 거슬리게 다가올 순 있지만, 그건 소위 '우익'이라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죠.



덧글

  • 포스21 2017/03/09 08:18 # 답글

    우익 뽕이라기 보단 미국에 대한 근거없는 피해의식이겠죠. 핵맞은 거야 지들이 전쟁을 안걸었으면 왜 핵을 맞겠습니까? 그걸 가지고 또 미국 끌고오고...막판에 그 미국녀(혼혈설정)가 자기 대통령 되었을 때 남주가 일본 총리면 적당한 파트너가 될거라고 하니까 " 파트너는 무슨 꼭두각시겠지" 라는 부분 등에서 상당히 거슬리더군요. 일본인들은 "갑을 관계" 라는 말도 모르는 거 같습니다.
  • 나인볼 2017/03/10 15:03 #

    일본이 미국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사실 한국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할 수 밖에 없죠(외교, 경제 면에서도 그만큼 밀접한 나라고). 좋은 방향으로던 나쁜 방향으로던 그런 감정들이 잘 드러난 영화 아닐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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