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우라조메 덴마(裏染天馬) 시리즈 책의 향기는 인생의 향기





솔직히 말하면 일단 발단은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대형서점에 갔던 날에, 저 표지에 낚여서 시리즈 첫 이야기인 '체육관의 살인'을 샀던 겁니다. 

앞표지에 그려져 있던 여자애를 보고, 이어서 뒷표지의 가볍게 써진 내용 요약(학교 안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구제불능의 오타쿠 탐정이 해결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을 보고 '오? 그럼 이 멀쩡해 보이는 여고생이 사실은 십덕후 탐정! 이거 제법...?!'이란 생각을 하며 샀던 건데, 알고 보니 표지의 여자애는 그냥 주인공이었고 십덕후 탐정인 우라조메 덴마라는 캐릭터는 따로 있더군요. 그것도 인남캐...Orz 

결국 아재 덕후의 센서가 만들어 낸 참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뭐 그래도 그 덕분에, 오랜만에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접했으니 전화위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작가인 아오사키 유고는 대학 재학 시절 라이트노벨 작가를 지망하면서 공모전에 작품을 투고했으나 전부 낙방하고, '라이트노벨보다는 미스터리 쪽이 더 어울린다'라는 말을 들은 것을 계기로 쓴, 데뷔작이자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체육관의 살인'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꽤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일본 위키에도 저 사실이 대놓고 써 있을 정도). 

그래서인지 그런 전력은 작품세계 안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서, 작품 전체에서 서브컬쳐 전반을 아우르는 패러디와 요소들이 넘쳐납니다. 주인공인 유나(바로 문제의 표지 캐릭터)를 비롯해서 소위 속성별로 배치된 주역 캐릭터들, 우라조메의 입을 통해 쉬지않고 쏟아져 나오는 오타쿠 용어들, 과장되고 다분히 코미디 요소가 짙은 대사들 등등, 시리즈 전체가 흔히 이야기하는 라이트 노벨 감성으로 충만한 물건이더군요.

특히 탐정역이자 작품의 핵심이면서도 세부적인 설정이 거의 드러나질 않아서, 그야말로 떡밥 투성이인 우라조메 덴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진행되는 줄기에 따라서 튀어 보이지 않게, 조금씩 풀어놓는 솜씨가 뛰어나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맛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캐릭터성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인데도, 그 덕분에 신경 쓰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더군요. 캐릭터성의 강조가 핵심인, 라이트 노벨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그런 정서가 넘치는데도 정작 작품의 구조 자체는 그야말로 본격(시기를 따지자면 신본격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추리물의 틀을 완벽하게 따라간다는 겁니다. 좀 무리수인 거 아닌가 싶을만큼 이래저래 끼어들어 날뛰는 탐정, 집요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섬세한 트릭과 밀실에 대한 집착, 그리고 피날레로 이어지는, 지금에 와서는 좀 케케묵은 패턴이라고까지 여겨지는 탐정의 '전원 소집'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본격 추리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형식미를 갖추고 있죠, 

그렇게 톡톡 튀는 라이트노벨 풍의 감성과 고전적인 본격 추리 스타일이라는, 어떻게 보면 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가지 요소가 작품 안에서 섬세하게 잘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물론 교고쿠 나츠히코 같은 작가 이후, 본격 추리물 안에서도 캐릭터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건 굳이 라이트노벨을 끌어들이지 않아도(아니 오히려 저 쪽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할지도?) 드물지 보이는 현상이었습니다만...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가의 '그 쪽 감성'은 작품 안에서 좀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작가 경력이 길지는 않다보니 가끔 그 둘 사이의 밸런스가 좀 위태위태한 부분도 보이지만, 시리즈가 이어져 나가면서 작가 스스로가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대로 보여서 그런 부분마저 오히려 더 재미있게 다가오는 면도 있어요. 이렇게 작가가 작품 안에서 자신의 작품을 조율하면서 갈무리하는 모습은 작풍이 완성된 기성의 거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렵죠. 그러면서도 신인급 특유의 거친 맛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작가의 능숙함과 재능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첫 작품인 '체육관의 살인'에서는, 아무래도 첫 작품이다보니 둘 사이의 저울추가 좀 왔다갔다하면서 파트에 따라 기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작품인 '수족관의 살인'에서는 균형이 추리물로서의 형식미 쪽으로 조금 기울어서,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아졌지만(덕분에 본격추리 대상을 수상할 뻔...) 첫 작품에 비해서는 쉽게 읽히지 않고, 트릭의 전반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꽤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작품인 '도서관의 살인'에서는(사실 두 번째 작품과 세 번째 작품 사이에 단편집이 한 권 더 있습니다만, 아직 한국엔 출간이 안 되었으므로... 얼른 나와줬으면 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다시 첫 작품과 비슷한 밸런스로 돌아옵니다. 덕분에 추리물로서의 평가는 전작에 비해서 좀 낮아졌지만, 대신 훨씬 더 수월하게 읽히고 깔끔해지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권에선 얼마나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까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라이트 노벨 팬도, 추리물 팬도 무난하고 재미있게, 크게 걸리적거리는 부분 없이 깔끔히 읽을 수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래성도 보이다 보니 이후의 작품을 기다리는 맛도 더해서 말이죠. 두드러지는 장점은 없지만 대신 딱히 단점도 없어서, 골고루 평균치가 괜찮은 그런 스타일의 작품들이라고 평하고 싶네요. 

조만간 개별 작품들에 대한 감상평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P.S

제 취향은 탁구부의 주장님 쪽입니다. 하지만 출연은 부진하죠(...).



P.S 2

물론 유나도 귀엽습니다. 우라조메 같은 거한테 주기는 아까울 정도(?).




덧글

  • LionHeart 2017/02/04 22:26 # 답글

    저도 주목하고 있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밸런스가 불안했었을 지라도 1권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1권이라는 것이 주는 임팩트도 한몫했지만 2권 부터는 기대를 높게 가져서 그런가 불만인 점이 계속 보이게 되더군요.

    저 역시 유나와 탁구 주장님이 좋은데 유나는 그렇다치고 주장님의 출연은 어떻게 개선되어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나인볼 2017/02/05 18:46 #

    주장님은 정보를 보니 단편집에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더 정발을 바라게 되더군요. ~_~;
  • Tao4713 2017/02/05 23:43 # 답글

    저는 추리 비중이 강했던 수족관을 가장 높게 봅니다만, 전체적으로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 빠른 주기로 신작이 나오지 못하는게 아쉽군요. ㅠ_ㅠ
  • 나인볼 2017/02/07 12:12 #

    그래서 더더욱 단편집이 정발됐으면 하는 바램인데... 힘들겠죠. ㅠ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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