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헤이트풀8 - 비릿하면서도 세련된 극장, DVD,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영화의 내용에 관한 누설이 있으므로, 관람 예정인 분들은 주의를.





- 토요일 저녁에 그나마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CGV 천호점에서 관람. 처음에는 강변에 갈까 했지만, 강변 CGV의 설비가 얼마나 거지같은지는 잘 알고 있으므로(...) 금새 생각을 접고 다른 곳을 골랐다. 천호점에는 처음 가 보는 거였는데, 극장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좌석 배치가 좀 마음에 들지 않더라.

아무래도 한국에서 '주류'에 속할 수 있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닌데다, 마지막 끗발을 날리고 있는 몇몇 한국 영화들도 있는지라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바글바글했다. 거의 만석이었을 듯. 뒷 타임은 12시 즈음이었는데도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토요일의 위엄 + 독점 상영이 만든 결과물이겠지.


- 영화 본편에 대한 느낌을 간략히 정리하면, '쥐덫(소설)'의 무대를 웨스턴으로 옮기고 거기에다 '저수지의 개들'을 소스로 끼얹으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싶다. 얼핏 보면 추리물같은 느낌을 주지만, 보는 이가 짐작하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요소가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그런 추리물 스타일'의 무대장치를 만들기 위해 분위기만 잡은 것에 가깝다.

그리고 실제론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와 긴장감을 깨는 돌발 상황과 그에 따르는 강렬한 예외성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의 영화다.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초반부의 전개와 대화들은 보는 이들에게 '지금 막 나오는 이 별 의미없는 이야기들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정말로 별 의미가 없다. 수라장이 시작되는 중반 이후부터 고전적인 탐정 포지션, 즉 사건의 해설가로서 분위기를 주도해 가던 워렌(사무엘 잭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변수로 인해 나가 떨어져 버린다.

처음부터 너무 노골적으로 쟤가 수상하다는 방향으로 몰아간 덕에, 되려 그건 아니겠다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던 조(마이클 매드슨)는 되려 진짜로 흑막이었고(정확히는 흑막 중 하나지만),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던, 본편 시작 전에 잡화점에서 벌어진 사건은 사실 막판의 처형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였을 뿐, 전개의 방향성과는 사실 큰 관련도 없었다.

중반부까지 언급했듯이 그럴싸하게 추리물같은 분위기와 긴장감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좁은 공간 안에 모은 에너지를 모든 방향으로, 삐딱하게 달려나가는 방법을 통해 터트리다보니 그 강렬함은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영리하게도 돌발 변수로 상황을 뒤엎고, 김을 빼듯 과거 시간대의 영상을 밀어넣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정 유도를 이끌어내는 타란티노의 솜씨에는 그저 감탄할 수 밖에...


- 좁은 무대속에 명배우들을 워낙에 많이 밀어넣다보니, 그들의 연기에 집중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주역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조연들도 하나같이 훌륭하다. 특히 후반엔 그의 표정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월튼 고긴스의 캐릭터는 주목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수준.

그리고 마이클 매드슨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존재감이라는 건 참... 그를 위한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영화 안에서 단순히 카메라가 그에게 옮겨가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쇳소리 섞인 그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생긴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배우다.


- 그리고 바스터즈와 장고 등, 최근의 작품에 이전에 비해 갈무리되고 다듬어져 표출되었던 타란티노 특유의 폭력성과 유혈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이래저래 터지는 돌발 상황 속에서 여지없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드러낸다. 모양도 세팅도 완벽한 성찬이지만, 고기를 잘라 씹어보면 그냥 피맛부터 느껴지는 그런 스타일의 요리라고 보면 될 듯하다.

눈치 빠른 사람은 여성에 대한 조금의 여과도 없는 폭력이 드러나는 초반부부터 심상치 않게 느꼈겠지만(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그녀에 대한 동정심과 측은지심을 발휘하면서, 뭔가 정체에 대한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이들이 분명 있겠지) 그런 이들이라도 중반 이후 머리가 터져나가고 뇌수가 흘러넘치고 피칠갑을 한 캐릭터들이 나뒹구는, 그야말로 유혈의 개판이 된 무대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을만큼 강렬한 이미지가 넘쳐흐른다. 그래서 최근작과는 달리, 아직 감독으로서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았던 초창기 타란티노의 냄새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이 부분은, 언급했듯이 바스터즈나 장고에서 본래의 강렬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잘 다듬어졌던 연출 방법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지라 보는 이에 따라선 과거작에 대한 자기 복제라고 느껴질 여지도 없지 않다. 호오가 조금 갈릴 수 있는 부분.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호오가 어떤지를 묻는다면, 물론 대만족이다.

오히려 '이래야 타란티노지'라는 생각을 후반 내내 했을만큼 즐겁게 봤다. '장고'가 타란티노 스타일을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만든 멋진 조각상이라면, 이 영화는 본래의 스타일에 금박지를 씌우고 포장만 고급스럽게 해 놓은 초콜렛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걸 깨물면 달콤한게 아니라 피맛이 터지는 거지(...). 거기에 질겁할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단골집의 맛이라며 즐거워할 이들도 많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후자 쪽이고.



덧글

  • 腦博士™ 2016/01/11 22:11 # 답글

    시작할때 마차가 저 멀리서 하루종일 오는걸 보고 심상찮다 싶었는데 타란티노 답게 역시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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