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영감식 화법 스포츠 월드


정상호 보소




근본적으로 SK네 영감은, 언제나 팀 안에서 해당 선수들이 자신들의 포지션(수비 위치가 아니라,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치, 역할 등)을 자각하고 경기에 임하길 바라는 인간이다. 집요하리만치. 늘 입에 달고 사는 '생각을 하면서 야구를 해야 한다'도 이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고.

즉 팀의 에이스면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거고, 4번이면 4번의 밥값을 해야 한다는 거고, 좌투수를 잡겠다고 라인업에 넣었거나 타순을 올린 타자는 그 의도에 부응해야 한다는 거고(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수비하라고 넣은 선수라면 자기 직분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지.

이건 어느 팀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선수 개개인의 우월한 재능보다는 팀 전체의 유기적인 조직력을 강조하고, 구성원 하나하나가(조금 삐딱하게 이야기하면) 타이트하게 부품화되는 야구를 선호하는 영감님한텐 더 크고 깊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는 이야기. 베테랑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상당 부분은 여기에 있다. 경험이 많기에, 그런 부분을 스스로 이해하고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 부분을 자각하고 야구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부상과 피로를 대하는 문제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거고. 근본적으로 경기 외에서 당하는 부상, 또는 경기 외적으로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를 자신의 역할,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보니까.

바로 영감 자신이 늘상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그 부분을 치열하게 생각하고 그러면서 야구를 대하고 경기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팀 선수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물론 사실 이건 늘 꼭 좋은 것만이 아닌게, 감독 자신의 마인드를 강요하는 것이 되므로 늘상 좋은 효과가 나오진 않는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투수 쪽에선 뱅두에 대한 발언과, 올 시즌 내내 정말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는 김오랄이에 대한 발언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뱅두가 시즌 초 날아다닐 때 이후 한동안 좀 부진했지만 그걸 김오랄이처럼 까던가? 그렇지 않음. 그건 뱅두가 조금 불안불안하긴 해도 투수진에서 자신의 포지션(선발이 무너졌을 때의 롱릴리프, 또는 우람노예 전에 나오는 징검다리 셋업맨)을 자각하고 영감이 설정한 역할을 군소리 없이 확실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임.

비슷한 케이스로 타선에서의 조동화가 있다. 이 쪽도 빈약한 타력으로 늘상 슼팬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인간이지만, 적어도 번트를 비롯한 각종 작전 수행과 수비 면에 있어서는 감독의 입장에서 '확신하고' 둘 수 있는 선수이고, 최소한 거기에 관련된 확신에는 언제나 부응한다. 그러니 타율이 1할대여도, 하위 타선의 블랙홀로 자리 잡아도 왠만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는거다. 적어도 영감이 생각하는 그 자신의 역할은 해 주니까.

반대로 김오랄이는 팀의 1선발이자 작년 다승왕이라는, 자신의 명확한 포지션이 있음에도 역할을 못 해주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작정하고 씹고 있는 거고.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영감의 김오랄이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다. 한 시즌 동안 영감의 김오랄이 관련 발언을 정리해보면, 사실상 그게 슼의 시즌 정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뭐. 영감이 기대치를 높여두고 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는 대상을 대하는 자세와 역할 설정은 엄청나게 다르다. 감정적인 문제를 아예 배재하다시피 하고 철저하게 거기에 맞춰 선수를 굴린다.

멀리 갈 것 없이 올 시즌의 매그레인만 봐도 알 수 있다. 매그레인을 언제나 실점 후 바로 내려 버리는 등 극도로 불신하며 다루고 있는 건, 그의 역량은 애초에 그 정도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역할을 맡길 생각이 없다는 소리다. 제대로 선발 취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 5월 초순 이후에는 거의 이름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철저한 쩌리 투수, 불량 부품. 이미 그 이상의 역할은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은 존재. 그렇기에 부진해도 집어서 강조하지 않는 것이며, 비난하지도 않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불신이 자기 관리 문제를 떠나서 역량 자체가 안된다고 보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는 거지(사실 본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좀 비판적이지만... 쯥).



그렇게 보면 김오랄이에 대한 영감의 기대가 얼마나 큰 건지, 새삼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기대하는 대상을 두고, 크보 선수들에게 있어선 일종의 '언급하면 안되는' 요소인 담배 관련 이야기를 대놓고 꺼내면서 씹은 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김오랄이에 대한 질타이고 동시에 강력한 불만 표출이라고 보면 된다. 김성근은 결코 김오랄이를 불신하고 있지 않다. 되려 너무 믿어서 탈이지.

그리고 그 이유를 자기 관리(더군다나 동계 훈련 시기에 안면마비로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에서 기인한 마인드 컨트롤 문제에서 찾고 있는 거고. 담배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이유다. 정신 문제를 계속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태가 안 좋으면 안 좋은대로 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데 못 하고 있고, 그건 그 선수가 충분히 문제를 극복할만한 역량이 있는데도(적어도 영감님이 생각히기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자각이 부족하고 생각이 부족해서라고 받아들인다는 거다.

그러므로 그가 특정 선수를 두고 비판을 가할 땐, 되려 그 대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가 보기엔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서 감독이 설정한 역할에 부응할 역량이 있는데도 안 되고 있다고 본다는 거다. (자신처럼) 치열하게 생각하고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자각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다는 거다. 다른 감독이 선수를 언급할 때와 성근영감이 선수를 언급할 때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실 왠만한 슥팬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번에 나온 정상호 관련 발언도 결국 그러한 맥락이다. 이야기 내내 박경완을 강조한 것은 예전에 자신의 입으로 언급했듯이 박경완의 출장은 후반기에나 가능하다는 거고, 그러므로 그 동안은 정상호가 팀 내에서 박경완의 역할을 수행해 줘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라는 이야기다.

SK란 팀에서 박경완이란 포수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보면,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팀의 주축 타자 중 하나라는 박정권은 심심찮게 라인업에서 빼면서도, 정상호는 정말 어지간해선 넣었던 것이 괜히 그런게 아니다). 고로 이걸 박경완처럼 아파도 뛰라는 이야기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조금 곤란하다. 영감의 화법은 언제나 역할과 포지션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지니까.

'경기중에 입은 부상도 아니고'라는 언급을 한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정상호의 상태를 영감은 실력 외적인 이유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각이, 생각이 부족해서 그런 부상이 나오고 태도가 나온다고 본다는 거지. 그리고 사실 현재 SK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그러한 비판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부상 투혼'의 강조는(개인적으로 이 문구를 몹시 싫어한다) 지양해야 하고, 저런 타이트한 마인드의 강요는 되려 선수 개개인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몇몇 트레이드 사례나 기타 결과에서도 보이듯이 실제로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고.

허나 프로 선수에게 있어 몸은 제 1 자산이자 관리 대상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경기 외적인 부상으로, 그것도 대개는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 입은 부상으로 경기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건 당연히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부상이 아닌, 단순한 경기 외적 사건(EX로 해담이나 임탠)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건 이 상황하고는 상관없으니 넘어가고). 선수 개인에게도 바보같은 짓이고, 구단이나 팬들에게도 민폐니까.

프로는 돈을 받는 만큼, 돈을 받는 이유가 되는 자신의 몸과 그에 관련된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이다. 큰 역할을 해 줘야 하는 선수라면 더더욱. 굳이 영감의 말을 빌 것도 없이, SK가 4월에 보인 강력한 모습의 중심엔 분명 정상호가 있었다. 그가 중심 타선에 자리 잡고 힘을 보여줬을 때, 슼 타선은 현재의 그것과는 도저히 동일한 팀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의 힘을 발휘했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박경완의 공백이 희미해져 있었다.

영감님이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모습일 것이다. 나도 그렇고. = _= 잠시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그런 역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거고(사실 김오랄 케이스와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어차피 극히 낮은 확률로 최씨나 어린 김씨 둘 중 하나가 미치지 않는 한, 올 시즌 슼의 주축 포수는 정상호일 거고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번 일을 받아들이면 된다.



덧글

  • 한빈翰彬 2011/07/03 00:42 # 답글

    어제부터 쓰고 있던 글이 있는데, 나인볼님의 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트랙백을 보냅니다.
  • 동네 최씨 2011/07/03 01:10 # 답글

    확실히 선수들이 실력을 떠나 감독이 부여한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감독이 "계산"된 경기를 할 수 있죠.
  • 屍君 2011/07/03 03:13 # 답글

    그러고 보니 영감님께서 맥레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죠.
    '나도 쟤 못하는 거 알아! 근데 대체가 없어 ㅠㅠ'
  • 제절초 2011/07/04 07:37 # 삭제 답글

    오오 영감님 오오
    그러고보니 되게 오랜만에 글 남긴다.
    포스팅해금은 했으니 덧글해금도 해야 되는데 덧글 달 의욕이 안 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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