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두견새가 울 때까지 때를 기다리는 너구리.
by 나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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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은 지폐 인물 문제.

새 화폐, 인물 '신사임당' 논란. <- 관련기사.





여기저기서 뜨겁다. 어느 포탈을 가던 주목을 끌기 위한 최고의 떡밥은 남녀분쟁이고, 그걸 익히 잘 알고 있는 자들은 '껀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때다 하고 사방 팔방에서 싸움의 씨를 뿌려대고 있다. 물론 분명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지폐 인물이기도 하고, 그 상징성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이 맞물리고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선 당연히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허나 지금의 논제는 거기에서 한참 일탈해선 '여자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괴상한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정말로 이건 아니지 싶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과는 좀 거리가 있는 감정적 성대결이 아니라 신사임당이 과연 지폐에 올라가기에 적합한 인물일지를 평가하고, 부정적인 결론이라면 대신 화폐에 적합한 인물이 과연 누구일지 평가하는 작업이 아닐까? 첫 여성 인물이라는 상징성을 물론 무시해서는 안된다.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해 신중히 평가하고 기존의 지폐를 대체할만한 긍정적인 요소들을 발견해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개인적인 생각으론 신사임당은 부적격자다. 인물 자체는 분명 좋은 평가를 받고 본보기가 될 여지가 많지만 그녀가 과연 '여성으로서 지폐에 실리는 첫 인물'이 될만큼 비중과 상징성을 가진 사람일까? 어느 쪽으로 생각해봐도 거기에 대해선 'NO'라고밖엔 말 못하겠다.

첫번째. 그녀가 율곡 이이라는 대현(大賢)을 키워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지폐에 올라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위대한 인물을 키워낸 현모'라는 코드 자체는 분명 가치가 있지만, 그것은 신사임당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말마따나 '현모양처 상' 자체를 우상화하는 것과 다를게 없으니 말이다. 인물을 키워냈다는 것 만으로 지폐에 올라갈 자격이 생긴다면, 졸지에 남편인 사도세자를 잃고도 유능하기 그지 없던 개혁 군주 정조를 키워낸 혜경궁 홍씨도 올라가야 된단 말인가? 형평성의 문제다 이건.

두번째. 위와 같은 반박이 나오면 보통 '신사임당의 높은 학문적 소양과 성취'가 언급되곤 하는데 이 점은 더 넌센스라고밖엔. 최초의 여성 시인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신분이나 직업 때문에 논란이 많을 황진이는 그렇다고 쳐도, 윤지당 임씨나 대표적인 여성 문인인 허난설헌의 그것이 신사임당에 비해 떨어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굳이 신사임당이 지폐에 올라갈 이유로 '학식'을 든다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의미를 찾기 힘들다.

위의 두 의문에서 나오는 결론을 역으로 도출해 보면, 신사임당이 지폐에 올라갈 이유는 단지 이이를 잘 키워낸 인물이라는 점 + 그 이이라는 인물의 명성과 상징성 + '동시대' 여성들 중에서 그나마 많이 알려진 '학식' 이 3가지 아닌가? 그리고 그것들 각각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낫진 않지만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있겠네. 허나 셋 중 두 가지나 그 아들인 이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까놓고 말해서, 이이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과연 조선이라는 남성위주 사회를 거쳐온 인물로서, 그리고 아무래도 벗어나기 힘든 그런 가치관에 입각한 역사적 평가에서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신사임당 자체를 격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지폐에 올라가야 할 이유가 아들에 저렇게까지 의존하고 있다면, 과연 그녀가 '지폐에 올라가는 첫 여성'으로서의 상징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생각해 보자는 거다. 내 입장을 말한다면 위의 이유들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자의 입장에서도 좀 심하게 말하면 '불순하다'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형평성의 문제로 봐도 그렇고, 상징성의 문제로 본다면 언급한대로 더더욱 말이다. 차라리 '대한민국 현모양처 상'이라는 이미지를 공모해다가 그걸 인물로 쓰는게, 의도가 더 명확해져서 괜찮게 보일지도?

세번째.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대체 언제까지 조선시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근대 이전의 인물들에게 묶여 있을지 좀 묻고 싶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폐에 실리는 인물은 보통 근현대사를 살아오며 해당 국가의 역사와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다(멀리 갈 것 없이 미국, 영국, 일본 세 나라를 한번 보라). 수백, 수천년의 역사라고 하지만 '근대 국가'로서 해당 사회가 자리를 잡은 것은 그 어떤 나라던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국가가 만들어지는데 많은 공헌을 한 인물들(또는 국가 자체에)을 기리며 그 상징성으로 지폐에 실어 알리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불행했던 근현대사, 그리고 지금까지도 격한 논쟁이 벌어지는 정치적인 입장 문제를 생각하면 섣불리 근현대사의 인물을 쓰기엔 힘든 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스개로 '누굴 올려도 친일문제 남북문제가 나올테니 다 치우고 조선에 올인한게 지금 화폐'라는 소리까지 있는 판이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그러한 선정을 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적 사실에서의 도피'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까놓고 비교해서 예를 들어 보자면, 난 최근 욘달프가 분해 시공을 초월중인 광개토대왕보다 유관순이라는 소녀 한 명이 더욱 긍정적인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관순이라는 여성이 가지는 상징성(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자유라는 코드를 붙여 홍보하기도 좋다), 그리고 엄연히 근현대를 살아갔던 여성이라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지금의 현실에서 환빠들 정도나 열광할 중국정벌이니 동북아의 제왕이니 하는 마스터베이션의 소재밖에 안될 '정복자'로서의 광개토대왕이 상징성에서 그녀를 능가할 수 있을까? 어디로봐도 대답은 'NO'같다.

그렇기에 세번째 이유에 입각, 같은 맥락에서 신사임당의 선정도 반대한다. '슬픈 시기였다'라고 애써 외면하고 버리기엔 이 나라의 근현대사에 아까운 인물이 너무나 많다. 암울하기 그지없었던 일제, 그리고 현대사를 지나오면서도 휘황한 가치를 잃지 않았던 여성들 또한 많다. 왜 그런 이들을 모두 제치고 또 조선시대인가? 왜 또 '전통적'인 여성상인가? 언제까지 근현대의 문제를, 새로운 여성상의 문제를 단지 민감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슨 독극물인것 마냥 피해갈건가?

정말로 새 지폐의 인물들은, 아니 모든 화폐를 통틀어 실리게 될 새로운 존재들은 부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줄 진취적인 인물들. 남자로서 또는 여자로서, 무언가 다른 존재의 영향 탓에 평가받는 것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인물들. 그리고 부정해선 안될 근현대사의 인물들. 찾아보면 그런 인물들은 많고도 많다. 먼 데서, 오래된 곳에서 찾이 말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좀 찾아보자.









P.S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해두는데, 현모양처라는 하나의 상을 마냥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 좋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끼치는 역할,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사회에 끼칠 긍정적 영향만으로도 사회의 모든 '훌륭한 어머니'라는 존재는 찬양받을 가치가 있다.

다만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살아갈지, 아니면 사회에 뛰어들어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세우는 독립된 존재로 살아갈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회가 어느 한쪽 역할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능력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닌, 선천적인 '성별'로서 사회적 역할이 고정되는 사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비단 성별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그렇기에 후자의 경우에 그런 길을 선택한 여성이 부당한 차별이나 편견에 희생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인식과 시각을 고치고 그러면서 환경과 사회를 차츰 바꿔 나가는게 페미니즘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고(대한민국 여성부를 싫어하는 건 정말 해야 할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by 나인볼 | 2007/10/03 21:02 | 망상구현화와 자기만족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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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10/03 22:57
그러니까 나혜석이라던가... 많잖아. 그러고보면 왜 학식 하면 꼭 문학쪽으로만 생각하는거야 다들;ㅁ; 그림, 음악...많은데.=3= 사임당 신씨도 한 그림 했고 말이지. 그 얘긴 아무도 안해서 섭섭...
Commented by 아르젠틴 at 2007/10/03 22:58
와아 동감이에요 ;ㅂ;!!
사실 심사임당도 나쁘진 않다. 괜찮네. 하고 생각했었는데, 부각되는 점이 현모양처 라는 거라서. 맘에 들지 않았지요(현모양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웬지 그걸 강요하고, 여자가 사회 진출하는 걸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톡까놓고 집에서 일해라. 라는 생각 ( ..);)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저도 유관순 누님이 좋아요 /ㅅ/
Commented by 개발부장 at 2007/10/04 09:04
개인적으로는 유관순 쪽입니다만...
Commented by 아카리 at 2007/10/04 14:28
저도 나혜석이나 유관순 생각했었는데 ... 또 딴데서 패미년패미년 타령해대니 또 기분나빠지네요 ㄱ-;
Commented by 우발사마 at 2007/10/04 15:30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예요. 차라리 남대문 도안을 넣고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지폐에 인물 넣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결혼해 보니, 처녀적보다 더 큰 여성이란 장벽에 놓여버린 것을 발견할때 마다 참 머라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Commented by 나인볼 at 2007/10/05 20:42
제절초/그러게. 아직 이 나라에서 '예술가'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긴 힘든가봐.
아르젠틴/유후후- 하나의 이미지로 성이 고정되는 사회가 되선 안되는거죠.
개발부장/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아카리/뭐 페미년 꼴마초 대결은 이제 지겹...;
우발사마/결국 아무리 개인이 개성적이어도 사회의 벽이란 건 엄연히 존재한다는 거겠죠. 그리고 그걸 만든게 바로 개개인이라는게 더 슬픈 점이고.
Commented by 선아 at 2007/10/10 17:58
유관순은... 나이도 좀 어린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폐에 들어가기엔 초상화의 선이 단순한편이라고 생각해버린 너무 실용적인 저<<<
사실 유관순만큼 여성 위인 중에 초인적인 일을 해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꺅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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