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말, 홍대의 유명 도서 도매점이었던 북새통의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몇 년전 그 근처에서 영업하던 또 다른 대형 매장인 한양문고가 폐업하고, 그 전후로 해서 홍대의 유명한 아트 전문서적 매장이었던 영진서적도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했었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아쉬움과 동시에 한 시대의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안타까워 했었습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덕질을 시작해 온 서울 덕후들에겐 홍대에서 오프나 친목 모임으로 밥이나 커피 -> 한양문고나 북새통, 영진서적을 돌며 만화책이나 일러집 등 덕질 물품 구입이라는 코스는 하나의 패턴이었죠. 나중에는 각 도매점들이 동인행사 홍보의 장으로도 쓰인 덕에 전단지나 홍보물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제 그런 풍경도 2020년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네요. 오랜 세월동안 그런 모습으로 덕질을 즐겨운 사람으로서 아련한 기분만 듭니다.
- 2020년은 많은 연기자들과 관련 인물들이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선 명배우 숀 코넬리와 커크 더글러스가 별이 되었고, 와칸다의 왕 채드윅 보스먼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마블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다케우치 유코가 그렇게 갔죠. 영화 음악의 거정 엔리오 모리꼬네도 유명을 달리했고, 한국에서는 오랜 세얼 동안 인상깊은 연기로 사랑을 받았던 대배우 송재호씨가 작고하셨습니다..
그들의 모습과 작품은 이후로도 오랜 세월동안 남아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겠지만, 더는 그런 작품들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늘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 마련입니다.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은 건 늘 빨리 없어져 버린다는 진리를 머리에 되새기듯 깨닫게 만들거든요.
-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 놈의 대역병 덕에 오랜 세월 동안 발을 딛었던 가게들도 사라져 갑니다. 집 근처의 단골 카페도 두 군데나 폐업했고, 홍대 쪽에서 가끔 가서 즐기던 음식점도 절반 이상 문을 닫아 버렸어요. 거리는 좀 멀어졌어도 워낙에 제 머리를 잘 아는 단골이어서 자주 이용하던 신천역(지금은 잠실새내가 되었지만요) 근처의 미용실도, 저렴한 가격에 바삭하고 맛있는 통닭을 팔아서 종종 집에 들어오는 길에 싸들고 오게 만들던 근처 재래시장의 닭집도 문을 닫았죠.
한 번 단골이 되면, 거리가 좀 멀어도 가격이 있어도 기본 십 년 이상은 죽 이용하는 성격인지라 그렇게 없어져 가는 가게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에 와서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왜 없어지지' 같은, 아저씨같은 생각이 들어서 연말이 조금 서글프네요. 하지만 이후로도 내내, 이런 기분으로 연말을 맞이하게 되지 싶습니다. 이젠 적지 않은 나이 위로 1년, 1년이 또 쌓이면서 점점 더 좋은 시절이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들은 기억 속에만 남는 것이 되고, 그 위론 익숙하지 않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 덧씌워진다는 건 언제나 달갑지 않는 일이죠. 그런 변화를 또 받아들이고 견디면서 늙어 가는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감상적인 기분만 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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